[Book]/자기개발2008. 11. 3. 22:36

6명의 하버드 공부벌레 인터뷰

6명의 하버드 공부벌레 인터뷰

가을, 물갈이의 계절



케임브리지에 가을이 찾아왔고, 하버드에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방의 9월은 대대적인 물갈이의 계절이다. 그 유명한 뉴잉글랜드의 단풍시즌이 시작되면서 주변 풍경의 물갈이가 시작되고, 또 한편으로는 100개에 달하는 대학, 25만 명의 학생이 운집한 보스턴 지역에 신입생들이 대거 몰려들어, 졸업생들이 비운 자리를 채움으로써 학교의 물갈이가 이뤄진다. 잡다한 살림살이를 가득 실은 자동차가 기숙사 앞에 속속 도착하고, 트렁크를 옆에 세워 놓고 지도를 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학생들이 늘어난다. 보스턴 사람들이 「바」에 힘을 잔뜩 주어서 「바-스턴」이라고 발음하는 보스턴에서 촌뜨기 대접을 받는 비결(?)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하버드」 로고가 커다랗게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 냉정한 보스턴 사람들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환영의 인사를 대신할 것이다.

둘째, 택시를 타고 「보스턴 유니버시티 (Boston University)」에 가자고 말한다. 택시 운전사는 보스턴 사람들이 「비유(BU)」라고 줄여 부르는 것을 모르는 점으로 보아 초행자가 틀림없는 승객을 보스턴 칼리지(Bosotn College)에 내려주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셋째, 보스턴 근교의 「Gloucester」나 「 Worcester」라는 지명을 보고, 「글루세스터」 또는 「워세스터」라고 발음한다. Gloucester는 「글루스터」로, Worcester는 「우스터」로 읽는 것을 알리 없는 이방인들에게 보스턴 사람들은 『뭐라고? 뭐?』라고 되풀이해 물으면서 은근 슬쩍 부담을 줄 것이다.

그러나 보스턴 사람들의 텃세가 아무리 심하다 해도, 하버드 입학 허가서를 받아들고 흥분하여 케임브리지로 달려온 1600명의 하버드 신입생들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지는 못한다. 케임브리지는 긴 여름의 한산하고 나른한 분위기를 벗고, 마치 새로 기름을 친 기계처럼 착착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국인들도 「○○ 대학 출신」이라는 말을 할 때는 대단히 인색하게 군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앨 고어를 하버드 출신, 공화당의 조지 W. 부시를 예일 출신이라고 말할 때는 학부를 따지지 대학원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버드가 대학원 중심의 대학이라 해도, 진짜 하버드生은 역시 학부생이다. 하버드 학부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레이몬트(Lamont)」라는 도서관이 있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대체로 그렇듯 공부하는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소파에 길게 누워 책을 읽기도 하고,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과제물을 풀기도 하고, 몇 시간이고 책상 앞에 단정하게 앉아 공부에 몰두하는 학생들도 있다. 저녁식사 시간인 오후 여섯 시가 되면 썰물이 빠지듯 일제히 몰려나갔다가 7시 반쯤 되면 약속이나 한 듯 다시 도서관으로 밀려든다. 겉보기에는 제멋대로 지만, 자신이 할 일은 착실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다. 도대체 어떤 아이들이 하버드에 오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지내는가, 진짜 하버드생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開講(개강) 후 2주일 동안 캠퍼스를 오가며 만난 하버드생 여섯 명을 인터뷰했다. 특별한 선정 기준은 없었다. 2~3학년은 다 어디로 숨었는지 우연히 1학년 세 명, 4학년 세 명을 만나게 되었다.

웨스트 포인트와 하버드의 갈림길

알렉산드라 하퍼스가 세 개의 트렁크를 들고 텍사스州(주)의 산안토니오를 떠나 케임브리지에 도착한 것은 9월 초였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학교 기숙사 이름에 딱 어울릴 법한 위글스워스(Wigglesworth)의 3층 꼭대기 방이 알렉산드라가 앞으로 하버드에서 첫 1년을 보내게 될 곳이었다. 비스듬한 천장 아래쪽에 놓인 일인용 침대, 책상, 작은 서랍장과 책장이 家具(가구)의 전부인 비좁은 방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사용하는 거실의 창으로는 시끌벅적한 하버드 스퀘어와 매사추세츠街가 내려다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면서, 다시 돌아올 때는 이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어요. 그러나 하버드에 도착하고 나니 이제 정말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인 자유로운 독립생활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감동을 느낍니다. 매일 좋은 의미에서의 충격을 경험합니다. 텍사스에서 뉴잉글랜드 지방에 가면 진짜 미국을 볼 수 있다는 이 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정말 이곳 분위기는 무언가 다른 것 같아요. 하버드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은 어떤 주제든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아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라는 텍사스州의 산안토니오市 근 처의 베르네 고등학교 332명의 동급생 중 유일하게 하버드에 지원해 합격한 학생이다.

『저는 하버드와 웨스트 포인트(미국 陸士 )에만 지원서를 냈고, 두 곳에서 모두 입학 허가를 받았습니다. 원래는 군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웨스트 포인트에 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하버드 입학허가서를 받자 마음이 변했습니다. 하버드를 졸업해도 군인이 될 수는 있으니까 우선 하버드에 가보자고 결심했어요. 왜 하버드에 오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공부하고 배우는게 좋아서 왔어요. 그리고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 여기 온 거지요』 하버드 대학은 알렉산드라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하여 합격시켰을까. 알렉산드라의 자기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하버드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곳이니까 제가 여러 가지 일을 한 경험이 있다는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저는 고등학교때 치어리더 팀을 이끌었고,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했고, SAT(Scholastic Aptitucle Test․학력적성검사) 시험에서 어학분야에서 770점을, 수학에서 750점을 받았어요(각 800점 만점). 피콜로라는 악기 연주도 잘합니다. 이번에 입학한 학생들을 만나보니 , 다들 어떤 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 둔 적이 있고, 그 경험을 통해 무언가 크게 배운 학생들이었어요』

공부 잘하고, 악기를 하나쯤 다룰 줄 알고 , 운동을 잘하고,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미국식 「全人교육」의 성공사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정도의 조건이 하버드 입학생들의 평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더십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알렉산드라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공군이었고 어머니는 도서관의 司書(사서)였다. 알렉산드라는 아버지와 사냥을 다니고, 어머니가 권해주는 책을 읽으면서 두 살 아래 동생과 평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군인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자, 이제 세상에 나가 이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일 을 해보자」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군인 이 떠올랐어요. 아버지는 전형적인 군인이셨어요. 월남전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군인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돌을 던지는 反戰(반전) 시위대를 보고 충격을 받으셨다고 해요. 국가를 위해 싸우다 돌아 왔는데, 그것을 인정해주기는커녕 비난을 받는 입장이 되자 혼란을 느끼신 거지요. 요즘도 월남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 때 월남의 공산화를 끝까지 막았어야 한다고 얘기하십니다. 군인으로서 사명은 무조건 완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과 反戰세력으로 상징되는 부모님 세대는 무조건 복종이 아니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던 세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자란 저희 세대는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바에 따라 움직이는 세대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앞 세대와는 다른 균형 있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더 나은 세대라고 생각해요』

알렉산드라는 1년 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물리학을 전공할 생각이다. 부모는 알렉산드라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지만, 생물학에 도통 흥미를 느끼지 못해 의과대학원 진학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학기가 시작한 지 채 한달이 되지 않았지 만, 벌써 공부하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하루에 서너 시간씩 공부에 집중하고 있지만, 다른 학생들의 수준을 잘 몰라서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다.

『실력과 재능이 있고, 일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서 따라오게 하는 것이 리더십 아닌가요? 빌 게이츠가 훌륭한 것은 그 사람이 벌어들인 돈 때문이 아니라, 그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빌 게이츠가 없었더라면, 그 이후 다른 사람들의 성공도 없었겠지요. 최고가 된 사람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 역시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알렉산드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이 정말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성공 아닌가요?』

학생신문 기자

9월18일 개강 후 첫 두 週는 「쇼핑 위크(Shopping week)」라고 해서 어떤 강의를 들을지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전에 여러 강의를 들어보는 시기이다. 이른바 강의 쇼핑인데, 덕분에 캠퍼스는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학생들 때문에 도심에 쇼핑이라도 나온 것처럼 붐빈다.

하버드에서 가장 즐거운 시기를 들라면 아마 이 쇼핑 위크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 그리 즐겁지만은 않지만, 어떤 강의를 들을지 생각해보고 서점에 가서 각 강의별로 선정된 교과서를 들쳐보는 일은 반복되는 일이지만 매번 가슴을 뛰게 만드는 흥분이 있다. 웬일인지 이번 학기에는 소위 인기강의로 꼽히는 강의실마다 학생들이 넘쳐 나서 강의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강의들은 추첨을 하거나 受講(수강)자격을 까다롭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수를 조절한다. 운이 나쁜 날이 계속되어, 꼭 듣고 싶었던 두 개의 강의에서 추첨에 떨어지고 말았다. 더글러스 오마일리를 만난 것은 「미국 대통령제」라는 강의실 입구에서였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탓인지, 강의실은 입추의 여지없이 만원이었고 강의실 밖 복도에 수십 명의 학생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작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올해는 왜 이러지?』라고 불평을 늘어놓자, 옆에 있던 더글러스가 『그러니까 1~2학년 때 미리 유명한 강의를 다 들어두어야 해. 4학년이라고 해서 추첨에서 우선권을 주는 것도 아니니까』라고 거만하게 말했다. 4학년이라는 더글러스에게 졸업 후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기자」라는 대답이 나왔다.

『저는 지금도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 하버드대학의 학생신문)의 기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돈, 권력, 명예 중 어느 하나를 추구한다면, 저는 그것을 약간 변형시켜서 영향력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이 추구하는 권력과는 좀 달라요. 제가 생각하는 언론의 역할이란 우선 감시자로서의 기능, 그리고 정책이 되었든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든 중요한 것을 집어내어 강조해주는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서 기자가 될 생각이에요』

이렇게 해서 인사를 나누게 된 더글러스와 다음날 하버드 크림슨 사무실을 구경하러 갔다. 매일 1만5000부를 찍어내는 하버드 크림슨은 규모가 작기는 해도 신문사의 구색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 1873년 「마젠타 (The Magenta)」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1876년 「하버드 크림슨」으로 명칭을 바꾼 이 일간지는 예일대학의 「예일 데일리 뉴스 (The Yale Daily News)」 다음으로 오래된 대학 신문이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데이비드 록펠러,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바로 이 하버드 크림슨 출신이다. 요즘은 인기가 좀 떨어졌지만, 저 유명한 언론인 월터 리프먼이 세 번이나 떨어진 적이 있을 정도로 하버드 크림슨 기자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던 시절이 있었다.

의욕 넘치는 사람들이 경쟁하는 곳

하버드 크림슨은 더글러스가 대학시절 가장 많은 열정을 바친 일이었다.

『하버드에 와서 처음에는 조정 선수와 하버드 크림슨 기자로서 두 가지 활동을 다 했어요. 그러나 조정경기 시즌이 다가오자 연습량이 늘어나서 도저히 두 가지를 병행 할 수는 없게 되었지요. 둘 다 너무나 하고 싶은 일이어서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몰라요. 결국 조정을 포기하고 하버드 크림슨에서의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일주일에 30~50시간을 일했으니까, 공부한 것을 제외하면 대학시절 가장 많은 에너지를 하버드 크림슨에 쏟아 부은 거예요. 일단은 뉴욕 타임스 기자가 되는 것이 제 희망입니다. 별다른 경력 없이 뉴욕 타임스 기자가 될 수는 없으니까 그 전에 작은 신문사에 가서 경력을 쌓을 생각입니다』

더글러스는 뉴욕에서 40마일 떨어진 뉴저지 州의 대리언 고등학교 출신이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신문 편집장이었고, 토론팀 대표였으며, 육상선수였고, SAT(학력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더글러스의 아버지는 11세 때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왔다.

더글러스는 정치문제에 관한 글을 쓰는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시절 나름대로 경력관리를 해왔다. 1학년 여름 방학에는 뉴저지주 하원의원의 사무실에서, 그리고 2학년 여름방학에는 현재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조셉 리버만 상원의원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현실정치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기회를 가졌다. 3학년 여름방학은 지방 신문사의 기자로서 일을 배웠다. 그는 조셉 리버만을 「맨 오브 인테그리티 (a man of integrity)」로서 존경한다고 했 다. 「맨 오브 인테그리티」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완벽한 인간, 또는 성실한 인간」 을 뜻한다. 이 표현은 미국인들이 웬만해서는 아무에게나 붙여주지 않는, 대단히 아껴서 사용하는 칭찬이다. 대통령 후보나 元老(원로) 대접을 받을 정도가 되어야 한번 들어볼 법한 찬사이다.

『맨 오브 인테그리티란 존경할 만한 사람, 자기 말을 지키는 사람,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더 큰 뜻을 위해 서는 자신의 이상을 잠시 접을 수도 있는 사람, 자신이 맡은 바 일이 요구하는 것 이상을 해내는 인간,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을 의미하지요』

그는 좋은 학생과 훌륭한 교수들이 만들어 내는 공동체야말로 하버드 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장점만은 아니다.

『하버드는 야심이 있고, 항상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욕에 넘친 학생들이 서로 경쟁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제가 하버드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이기도 하지요. 의욕이 너무 넘치다보니, 다들 정신없이 바쁘고 언제나 무엇엔 가 집중하고 있어요. 자신의 일에 그토록 골몰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친구들 사이의 유대가 약하고, 결국 하버드야말로 정말 외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더글러스는 아버지의 고향인 아일랜드에 관심이 커서 1920년대 초반 아일랜드 평화협상에 관한 졸업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더글러스가 애정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약 80쪽 분량의 졸업 논문은 하버드에서 보낸 대학시절을 결산하는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디자이너가 꿈인 한국 출신 학생

하버드의 옌칭 연구소 앞을 지나가다가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있던 자넷 김(김성희)과 마주치게 되었다. 마침 한국 출신 학생을 한 명 만나려던 참이라, 자넷이 中級(중급) 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자넷은 뉴욕 출신의 신입생이다. 자넷의 부모는 1980년 미국으로 이민왔고, 다음해 자넷이 태어났다. 자넷 역시 다른 하버드생들과 마찬가지로 다채로운 경력을 자랑한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장이었고, 일곱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수영, 테니스, 육상 등 스포츠에 능하고, SAT에서 1560 점(수학 800, 어학 760)을 받았다. PSAT(Preliminary Scholastic Aptitude Test, 일종의 예비 SAT. 각州별로 성적우수자 50명에게 2000달러의 장학금을 준다)에서 만점을 받아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경제학을 전공할 계획인 자넷은 사실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한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꼭 하버드에 가야겠다는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느 대학이 되었든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준비를 한 거지요.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도 하버드 래드클리프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지만 , 주변에 잘 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바이올린이 제 경력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미술에는 재능이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개발해볼 기회가 없었어요. 이제 대학에 왔으니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지요. 일단은 경제학을 공부할 생각입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된다 해도 경제학은 도움이 될 테고, 만일의 경우 디자이너가 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우선 여름 방학 동안 관련 분야에서 인턴을 해보고 나에게 적당한 일인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고 거기에 맞는 계획을 짜 나갈 생각입니다』 하버드의 학부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한다. 1학년은 본 캠퍼스 가까이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2학년이 되면 「하우스」라고 불리는 기숙사로 옮겨가 4학년까지 그 곳에서 생활한다. 영국의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의 칼리지를 본따 만든 이 하우스는 기숙사 건물과 정원이 한 울타리 안에 싸여 있는 각각 독립된 기숙사로서, 현재 13개의 하우스가 있다. 각각의 하우스는 300~350명의 학생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캠퍼스 안의 강의실이 공식적인 학교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하우스는 학생들이 생활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서로에게서 배우는 非공식적인 배움의 場이다.

『저는 특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버드는 뷔페식당과 같다. 일단 식당 문을 들어서면 마음껏 식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무엇이나 원하는 대로 골라먹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먹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1학년 때부터 어떻게 영양가있고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적당하게 먹을 것인지 주의 깊게 계획을 짜지 않으면 안된다.

1000개가 넘는 강의가 있고 100가지 이상의 과외활동 리스트가 있다. 단순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갑작스레 다양한 기회와 선택에 직면한 1학년 학생들은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마치 인큐베이터처럼 1학년 학생들을 강의실에서 가장 가까운 기숙사에 모아두고 같이 강의를 듣고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어 학생들이 무리 없이 대학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1 학년 末(말)이 되면 전공과목을 정하고, 2학년부터 들어가게 될 하우스를 정한다. 학교측에서는 친한 친구들 몇 명이 같은 하우스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자넷은 선배들로부터 1학년이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충고를 들었다. 첫째 너무 많은 종류의 과외활동에 참가하지 말 것. 시간관리가 어렵고 생활의 초점이 흐려진다. 둘째 적어도 1학년 첫 학기 동안은 특별한 異性(이성)친구를 사귀지 말 것. 그러다가 헤어지고 나면 아는 친구들이 거의 없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셋째 교과서는 헌책을 구입하고, 효율적으로 책 읽는 방법을 읽힐 것, 넷째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할 것. 1학년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자넷은 경제학과 글쓰기,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는 책을 읽고 과제물을 해내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드는가를 알아내서 시간관리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일단 공부에 필요한 시간의 견적(?)이 나와야 다른 활동들을 거기에 맞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학생들의 특징이라면 의욕이 넘친다는 거예요. 여러 분야의 일에 스스로 나서서 봉사를 하겠다는 친구들을 많이 봅니다. 사실 그거 안 해도 그만이에요. 그런데 굳이 자기 시간을 내가며 그런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올해 하버드에는 1만8000명이 지원해서 그중 2000명만 입학허가를 받았어요.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그 비싼 학비를 부담하며 이 학교에 보내주신 것, 하느님께서 제가 이 학교에 가도록 해주신 것,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고 뜻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혜를 받은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거야 하버드 졸업장 때문이지요』

역시 신입생인 티모시 위클랜드는 버몬트州 출신이다. 걷는 것은 춤추는 듯하고, 말하는 것은 노래하는 듯한 티모시는 발랄하고 경쾌하다. 왜 하버드를 택했느냐는 질문에 『그거야 하버드 졸업장 때문이지요. 대학원에 진학할 때나 직장을 구할 때 하버드 졸업장만큼 가치 있는 게 어디 있겠어요』 라고 말했다. 티모시는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15년 만에 처음 나온 하버드생이다.

『하버드가 대도시 보스턴과 가깝다는 것도 중요한 고려사항 중의 하나였어요. 프린스턴이나 예일도 좋은 학교지만, 주변 환경이 좀 지루할 거 같았어요. 저는 지루한 것은 잘 참지 못하거든요. 버몬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학교생활이 너무 지겨워서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일년 동안 있다 왔어요. 물론 하버드에는 각 분야 최고의 교수들이 있다는 것 또한 제가 하버드에 오고 싶었던 이유지요』

이미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아랍어까지 할 줄 아는 티모시는 그것도 모자라서 이번 학기부터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외에는 사진학과 수학, 사회학 과목을 듣고 있다. 티모시는 의욕이 넘치고 관심사가 다방면으로 흩어져 있어서 솟아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즈음 무엇을 하고 지내느냐는 질문에 티모시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에 네 시간 공부하고, 여섯 시간은 잠을 자요. 그 외에는 댄스 팀에서 춤 연습을 하고, 연극 연습을 합니다. 피아노를 치고, 노래도 부르고, 색소폰 연주도 하고, 도서관에서 시간제로 일도 해요. 많은 미국인들은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지요. 저도 그래요. 게다가 저는 순간순간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요. 친구들 중에는 이제 하버드에 들어왔으니 그것으로 됐지 않은가, 잘난 척하지 말고 느긋하게 지내자고 하는 「고상한」 부류들도 있지만, 저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요. 매 순간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요. 덕분에 너무 바쁘긴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티모시의 부모는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부담한다. 그러나 티모시는 시간제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식당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어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이며, 돈을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일찍 깨닫기를 바라셨어요. 그래야 제가 앞으로 규모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돈에 관해서는 부모님과 無言(무언)의 약속이 있습니다.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부모님이 대주십니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제가 벌어서 삽니다. 예를 들어 운동화가 한 켤레밖에 없는데 낡아서 새로 사야 할 때는 필요한 거니까 부모님이 사주시고, 필요하지도 않은데 맘에 들어서 여분의 신발을 하나 더 사게 되면 그건 불필요한 거니까 제가 번 돈으로 사는 식으로요』

도대체 졸업하고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건축가, 인권 운동가, 생물학자 세 가지를 읊어댔다. 그리고는 하고싶은 게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사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요컨대 누구라도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똑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그런 일은 사양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쿠바 출신 게이

에디를 만난 것은 티모시와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였다. 티모시가 『여기 하버드에서는 친구들과 언제나 수준높고 지성적인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라고 했을 때 우연히 옆에 앉아 있던 에디가 가소로워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끼어 들었다.

『그래? 도대체 너희들이 무슨 지성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에두아르도 애드리언 프리골라」라는 긴 이름을 가진 에디는 쿠바인이다. 다음달이면 미국 시민권을 받게 되지만, 아직까지는 법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쿠바 사람이다. 에디의 아버지는 스페인, 어머니는 포르투갈 출신으로서 쿠바에서 살다가 에디가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이민왔다. 에디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토렌스라는 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저는 여기 하버드의 전형적인 학생들과는 좀 달라요. 학점 벌레도 아니고, 명예를 얻는 일에도 남에게 인정받는 일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학생회 일을 한다든지 하는 「정치적인 일」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하버드에서는 드물게 야망이 없는 조용한 생활을 해왔다고 할 수 있지요』 마치 그는 「나는 하버드의 嫡子(적자)가 아니랍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에디는 확실히 소수집단에 속한다. 그는 쿠바인이며, 가톨릭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게이(동성연애자)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제가 동성연애자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끊임없이 「나는 여자아이들을 좋아한다」고 자기 암시를 했지만 소용없었어요. 밤에 잠이 들 때면, 「내일 아침에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되어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잠이 들었지만, 깨어보면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그 긴 절망의 시간들을 지나면서 저는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無神論者(무신론자)지요. 제가 남과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고민하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공부에만 힘을 쏟았어요. 파티에도 가지 않았고, 친구들과 몰려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혼자 있게되면 비디오게임을 했어요. 아직도 영어를 잘 못해서 곤란을 겪는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어요. 아마 미국 사회에서 하층에 속하는 경제수준일 겁니다. 어릴 때 좋은 옷을 사 입는다든지 그런 것은 생각도 못했고, 그저 1년에 서너 개의 새 게임 팩을 살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행복했어요』

에디는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갈등하면서 공부에만 전념한 결과 출신고등학교가 생긴 이래 최초의 하버드생이 되었다. 그러나 에디 자신이 하버드생이 되기 전까지 단 한번도 「하버드생」을 본 일이 없었다. 입학 초기에는 다른 하버드생들이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이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끼곤 했다 .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다들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3년의 대학 생활은 그를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화시켰다.

『제게 하버드는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장이었고, 많은 일들을 이전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 곳입니다. 제 자신이 누구인지도 더 잘 알게 되었지요. 지난 3년 동안, 주변에 우수한 학생들을 수없이 보면서 그 이전의 저 자신을 완전히 허물고 그 위에 새 건물을 지었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전처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것은 4학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달았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 수학과 물리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제가 그 분야에 재능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어요. 그런 데 하버드에 와보니, 제 수준으로 수학과 물리를 하는 학생은 널렸더군요. 그것은 나만 갖고 있는 남다른 재능이 아니었어요. 친구들 중에는 어떤 개념을 보는 순간,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냥 이해해버리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재능을 가진 경우도 많아요. 그런 친구들을 바로 옆에 두고서 어떻게 제가 수학과 물리에 재능이 있다는 착각을 하겠습니까. 자기가 속한 작은 사회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한다고 하는 것이 자기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결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에디는 즐겁게 공부했다. 프랑스어와 일본어가 재미있었다. 어린 시절 닌텐도라는 일본 비디오 게임을 하도 많이해서 일본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덕에 「동아시아 지역 연구」가 전공이 되었다. 에디는 규칙적으로 공부하는 型이다. 한 주만 공부가 밀리면 「제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꾸준히 공부해왔다. 원하는 것만 할 수 있다면, 언어에 관한 공부를 계속하겠지만, 그에게는 갚아야 할 빚이 있다.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았고, 시간제로 일도 했지만, 부족한 부분은 대출을 받았습니다. 더 많은 시간 일하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대학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기는 싫어서 대출을 받았지요. 그 돈을 갚으려면 아마 투자은행 같은데 취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몇 년 일해서 돈을 갚고, 그 다음에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취직을 할까 고민을 시작하니 새삼 하버드 생이라는 점이 도움이 되더라고 했다.

『하버드생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니 그건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명문대 출신이라고 하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은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대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좋은 친구 몇 명과 클래식 음악만 있으면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돈 때문에 불편하지 않은 정도로만 돈을 벌면 될 거 같아요』

동아시아 역사를 전공하는 한국系 조이스는

4학년이 되면서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컨설팅 회사를 고려하고 있으나 아직 확신은 없다. 하버드에 입학할 때는 의과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의과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학부 시절 필요한 과목들을 차근차근 이수하고 학점관리를 잘 해야 한다. 생물학, 수학, 유기화학, 일반화학, 물리학을 각각 두 학기씩 이수해야 하는 「프리 메드(Pre Med)」가 의대 진학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조이스는 자연과학 분야에 그다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여기 정말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 누가 풀 수 있지?」라는 식으로 경쟁하는 자연과학 분야보다는 여러 가지 방법과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는 역사공부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리스의 영웅들」이라는 강의를 들을 때는 모든 의견에 偏見(편견) 없이 귀기울여주는 교수의 태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교수의 열의와 기쁨은 학생들에게 전염되고, 그것이 바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倍加(배가)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한국역사에 관한 강의는 한국인인 조이스의 흥미를 가장 자극하는 분야였고, 결국 동아시아 역사를 전공으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이스는 아직도 앞날이 불투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교에 좀 더 남아서 의대 진학에 필요한 과정을 마무리할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제가 이렇게 망설이고 있으니까 부모님께서 걱정을 하세요. 제가 야심이나 목표를 잃어버린게 아닐까 우려하시는 거지요. 불확실한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나 확실한 것을 알기 위해서 좀 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왜 서둘러야 하는지 스스로를 먼저 설득할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으면 미국 친구들은 「무조건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미국 학생들과는 조금 달라요. 이왕이면 저희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실 만한 일을 하고 싶어요』

이민 2세들의 공통점

하버드에는 많은 기회와 선택의 길이 열려 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할지 대신 선택해주지는 않는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면서 「자, 여기 좋은 일이 있는데 해보지 않을래?」라고 말해주지는 않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에 왔을 때 여기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동네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주변에 아무리 잘난 척하고 설치는 아이들이 있어도,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여유를 잃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이 시작되니, 하도 경쟁이 심해서 늘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워낙 다양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많아서 늘 나는 최고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나는 너무나 보통의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이곳에서 기회를 찾고, 열심히 공부하고,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면서 자신감을 다져 나갔습니다. 하버드생이니까 웬만한 일은 다 할 수 있을 거라고들 하지요. 그럴지도 몰라요. 그러나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아무거나 할 수는 없어요. 자기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길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조이스는 하버드 한국학생회 회장이다. 이 모임은 10여 명을 주축으로 움직이는데, 약 50명 정도의 학생들이 나올 때도 있다.

『하버드의 한국 학생들은 마음이 급한 것 같아요. 세상에는 늦게 꽃피는 재능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탐험하는 여유도 필요한데, 그런 여유가 없는 것처럼 보여요. 뭔가 다른 생각을 해보기 위해 1년을 쉰다든지 하는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에 들어가지 않지요. 주위로부터 「너는 하버드생이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것을 단기간에 성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을 늘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한국 이민 2세들 특유의 부담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무엇을 하시든 자녀교육을 위해 애써온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하루 빨리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성과를 이뤄서 돈 많이 벌고 안정된 삶을 이루려는 것이지요. 하버드의 한국 학생들은 한국어를 잘 못하는 편이에요. 다른 대학의 한국 학생들은, 한국학생들끼리 만나면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편하거든요. 아마 자녀들을 미국 주류 사회에 보내기 위해 한국의 부모들이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싶어요』

왜」보다 「어떻게」를 배운다

여기서 새삼 하버드생들의 우수함을 강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들도 알고 보면 「뭔가 재미있는 일 없을까」라고 놀거리를 찾는 평범한 스무 살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하면서, 다들 의욕과잉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여섯 명의 학생들은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야망, 열정, 경쟁, 성공, 기회, 선택」과 같은 표현들을 자주 썼다. 하버드가 원하는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학생」이란 바로 이런 학생들인지도 모른다. 흔히 프랑스와 독일의 교육은 「왜 사는가 」를 가르치고, 英美권의 교육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친다고 한다. 첫 번째로 인터뷰했던 알렉산드라는 『미국인이란, 생각하는 법을 배우며, 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어떤 상황이든 잘 다룰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고, 기회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확실히 미국인은 「어떻게」의 인간들이다. 미국 문화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 이것은 과정만 보고 결과를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떻게」라고 하는 과정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면 결과는 보장된다는 강력한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어떻게」의 各論으로 들어가면 미국식 대학교육은 대단한 경쟁력을 발휘한다. 한국 과 미국의 대학교육을 다 받아본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식 교육이 갖고 있는 내용의 탁월함보다는 공부를 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우수성에 더 감동 받는다.

한 학기 내내 같은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은 교수에게나 학생에게나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4년으로 길어지면 그 과정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 한 개인의 성실함이나 열정만 가지고는 달성할 수 없는 일이다. 탁월한 품질이나 우수함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 뒤에는 우수하게 만들겠다는 의식적인 목표설정 과정이 있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성실한 노력이 있으며, 이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현명하게 방향을 재조정하고 효율적인 실천방안을 개발하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하버드의 아이들은 열여덟, 열아홉의 나이에 부모를 떠나 경쟁자이자 친구인 또래 집단의 세계로 들어간다.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이라는 하버드에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기라성 같은 교수들 밑에서, 저마다 깜짝 놀랄 만한 재능을 적어도 하나씩은 숨기고 있다는 동기생들과 경쟁하고, 생활하면서 서로 영향을 끼치며 자신을 만들어간다. 하버드 神話(신화)는 하버드 밖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하버드 안에서는 힘을 못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경쟁은 남과 하지만 승패는 자기관리에서 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조이스는 『하버드 아이들은 자기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단히 인색하다. 아무 조건없이 시간을 남에게 내주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다들 인간관계보다는 공부를 더 중시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경영 분야라는 「자기 경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인터뷰한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하버드에는 엄청난 기회와 가능성과 자원이 있지만, 자신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이런 인식을 통해 하버드의 아이들은 자기 내부에서 끊임없이 동기유발을 해낼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스스로 비전을 만들지 못하면 남의 비전에 同乘(동승)하는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남을 따라하는 일에 불과하며, 그렇게 되면 성공할 수도, 행복해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인간은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식을 보면서 비로소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걱정한다』고 했다. 하버드의 아이들을 보면서 한국의 20대를 생각했다. 그리고 세계화의 이름 아래 벌어질 치열한 경쟁의 세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간 조선 2000. 11월호 강인선)

If you don't have a competitive advantage, don't compete. - Jack Welch -

Posted by n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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